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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적응하고 잘하는거 보고나서는, 프릴리지일베 아무리 못해도 2시즌은 기회주고 싶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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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튀폴리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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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뉴는 프릴리지일베 원래 카세미루때문에 서브였는데 뭘 새삼스럽게 프레드한테 밀렸다고 써놧냐ㅋㅋ

너도 리버풀 지역지에서 잘한다고 프릴리지일베 좀 빨아준거 살인마네 왜빰? 불륜한 반다이크 왜빰? 이러면 좋냐 댓글 몇개 적었으면걍 넘어가지 왜이리 찡얼대 ㅋㅋㅋ

내가 어릴적 아버지는 1966년에 웸블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걸 멈추지 않으셨다. 


 "마이크 트레빌콕이 들어와서는 2골을 넣었었지" 12세의 자식에게 선수가 골을 넣은 것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해보이면서 그는 계속 설명했다. 


 "0-2로 우리가 열세에 몰렸을때 도로 건너편에 리버풀을 응원하는 여자가 거리로 뛰쳐나오더니 웃었거든? 그런데 우리가 결국 3-2로 이겼단 말이야."

황금세대 멤버들이 자기네들이 생각했을 때 부진했던 이유들


1. 타국들은 세계 각국 타리그에서 뛰는 애들이 많아 대표팀에서 모이면 반가워했음. 근데 잉글 멤버 대다수는 자국 리그에서 뛰고 1시즌에 최소 2번 이상 마주치는 경쟁 상대였기에, 리그에서 이용당할까봐 경기 중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안 했다고...


2. 442만 고집하는 등 보수적인 감독들

근데 저때 멤버는 좋은데 겹치는 선수가 많아 베스트로 보면 은근 비는 포지션 있었다더라 대표적으로 왼쪽 윙이랑 키퍼가 진짜 고질병이었다던데 램제 공존 안되는건 너무 유명하고


3. 그리고 클럽에서는 항상 이기는데 익숙하던 선수들이 국대에만 오면 영 성적이 안 나오니 자신감이 떨었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하자면, 에버튼은 1966년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에 잉글랜드와 서독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에서 제프 허스트[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한 잉글랜드 선수]나 러시아인 선심[월드컵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선수의 슛이 골라인을 넘었는지 미심쩍은 상황에서 잉글랜드의 세번째 골이라고 인정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표팀보다 응원팀을 더 사랑하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클럽의 팬의 시각으로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커뮤니티에서 컸기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부틀[리버풀 근교]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훌륭하고 위대한 두 개의 축구 클럽이 있었다. 웸블리는 컵대회 결승전이 있을때나 갈 생각을 하는 곳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영국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위한 팀처럼 느껴졌고, 우리는 우리 문 앞에 있는 것에 너무나도 집착해서 그 외에 다른 것에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관심을 쏟지 못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내가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를 바랐던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에버튼 소속 선수들인 피터 리드, 게리 리네커, 게리 스티븐스, 트레버 스티븐이 대표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8강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탈락시켰을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때의 나의 반응은 그의 두번째 골을 재현하기 위해 공을 집어들고 공원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A매치 휴식기가 찾아올때마다 나는 그레엄 샤프의 등번호가 박혀있는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곤 했고, 네빌 사우스올과 케빈 락클리프가 뛰는 웨일스를 응원했다. 케빈 쉬디가 있다는 이유로 아일랜드 대표팀의 승리를 바란 적도 있다. [전부 에버튼에서 뛴 적이 있는 선수들]


 내가 아는 리버풀 사람들은 모두 이랬다. 우리는 국제적인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선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이런 심리가 국내 정치와 지역의 분열로 인해 생겨난 '잉글랜드가 아니라 스카우저다'라는 의식에 기반한 것이란 이론들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적 1980년대의 정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결코 반(anti) 잉글랜드를 하는 것이 아니었고, 특히 6살이었던 내 마음 속에 정당 정치가 있지는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좀 더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내 정서적 애착은 에버튼에 있었고, 앞으로 있을 잉글랜드 경기를 걱정하면서 잠에 드는 일은 없었다. 


 2008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나는 이 주제에 한 챕터를 할당했다. 이러한 관점이 선수시절 커리어에도 이어졌고, 나의 충성심이 에버튼에서 리버풀로 옮겨졌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파문을 야기했다. 


 이는 복잡근데 저때 한명한명은 슈퍼스타였는데

테리 퍼디말고는 조합도 안좋았음

램제는 말할것도 없고 오웬-루니도 별로였고

애슐리콜이 오른쪽이였으면 스피드,드리블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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