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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전설들을 보내기엔 내가 아직 너무 어리다.. 메이저놀이터 텐벳 최소 반백살은 먹을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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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메이저놀이터 텐벳 일간지에도 실리다니 유상철이 확실히 명성있는 사람이긴했네

유상철은 선수 생활 내내 슈투트가르트부터 메이저놀이터 텐벳 PSV 에인트호번까지 유럽 클럽 이적설에 숱하게 휩싸였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이름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클럽 바르셀로나였다. 1998년에는 바르셀로나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는 보도가 국내 및 해외 언론을 통해 쏟아진 바 있다.


이에 관해 그는 "바르셀로나 측에서 테스트를 제의했다. 유럽 기자에게 전화가 오기도 했다"며 실제로 제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 에이전트가 중개를 했는데, 그때 선수들 사이에서는 에이전트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잡혀있지 않았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테스트를 보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무산됐다. " 유상철은 "지금 생각하면 아쉽죠"라고 웃음지었다.


최고의 주가를 달렸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유럽에서 수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다. 언론 인터뷰에서 직접 "벨기에, 터키 등 중위권 리그는 생각도 아예 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상철은 "잉글랜드의 토트넘 홋스퍼와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토트넘과 풀럼에서 제의가 왔었다. 그중 토트넘과는 최종 협상만 남겨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속 팀이었던 가시와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헹가래까지 받았을 정도로 이적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막판에 일이 꼬이면서 최종 결렬됐다"고 아쉬워했다. 한국 축구사 첫 프리미어리거로 박지성이 아닌 유상철의 이름이 새겨질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상철 행님이 직접 얘기한 바르샤와 토트넘 이적설.

90년대까지는 에이전트 개념도 불명확했고 유럽도 입단테스트 형식의 제의가 많았었고

2000년대 이후라면 그런 그림은 아니긴 할거임.

실제로 2002이후 토트넘 오퍼는 30살인데도 정식 오퍼였으니..


그는 1998년에도 벨기에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그는 그의 16년 클럽 경력 전체를 아시아에서 보냈고, 일본의 J리그와 그의 본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또한 2019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감독직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그 해 11월 21일, 그는 4기 췌장암을 진단받았다.


그는 "저는 4기 췌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10월 말에 황달 같은 눈과 몸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철저한 건강 진단을 받았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는 시즌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치료를 시작하며 시즌 말까지 팀을 이끌었다.


유상철은 월요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물 두 살의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유비 유상철 선수. 부디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하아...너무 슬프다.

2002년도 역사를 시작하던 폴란드전 골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행복했던 기억도 없었겠죠 제 인생에서 한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준 사람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비 롭슨 경이 5번의 암 선고 및 투병 후 별세했을 때 한 팬이 "그는 암에게 진 것이 아니다. 단지 암에게 한 골을 실점하고 4-1로 경기가 끝난 것이다" 이 구절이 갑자기 생각나네

감독님 병마와 싸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은 진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한 골을 실점하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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